28/04/2017
우리 런던양복점이 ‘런던’이라는 이름을 갖고 양복을 만들어 온지도 50년이 다 되어갑니다.
양복의 발상지인 영국 런던에 버금가는 옷을 만들고자 한 열망에서 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달려오게 되었습니다.
전세계의 사람들이 London에서 옷을 맞추고자 했고, 그것이 여의치 않은 사람은 london에 사는 영국인처럼 보이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. 그들처럼 저희 양복을 이용해주시는 분이 한 순간의 세련됨과 멋짐을 넘어서 나아가 그 옷이 고객의 두 번째의 인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옷을 만들어 왔습니다.
한국에 양복이 뿌리 내린지도 어느덧 백년의 세월을 넘기고 있습니다. 그 세월의 흐름 중간에 서서 비스포크 방식만을 고집하며 한 자리에 우두커니 뿌리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고객 여러분의 사랑이 없었다면 실현되지 못했을 것입니다.
저 멀리 시골에서 물어 물어 저희를 찾아와주신 촌부에서 부터 정, 재계의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, 이제 막 소년의 앳된 티를 벗기 시작한 젊은이에서 허리가 굽고 머리에 서리가 내린 노인들까지, 저희들은 지위의 높고 낮음, 나이의 젊고 늙음 없이 한 분 한 분을 평등하게 모셔왔습니다. 그것이 저희가 오랜 시간 옷으로써 사랑 받아 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.
인생의 중요한 자리와 시기에 항상 우리는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그것을 마음 속에 혹은 카메라의 힘을 빌려 기록하려 합니다. 양복을 잘 알지 못해도 은연중에 그것을 찾고 활동에 조금의 제약을 받더라도 그것을 입고자 합니다. 인생의 최고의 순간에 최선의 모습을 나타내고 싶은 것은 우리가 가진 하나의 욕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. 그러나 그 욕구를 제대로 해소시켜 준 양복점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.
시장의 상술, 단절된 맞춤복의 역사로 우리는 비스포크의 의미를 바로 알지 못하고 양복점의 간판을 꾸며주는 흔한 보통명사쯤으로 알고 있습니다. 그리하여 Bespoke 라는 단어는 공허함만 가득 찬 두서없는 메아리가 되었습니다.
비스포크는 단지 채촌의 정확함, 좋은 재봉기술, 가봉의 유무로서 판단되는 기계적인 개념이 아닙니다. 전자의 것을 모두 포괄한 인간의 감성으로 만들어 내는 것, 그리고 그 부분 부분의 비율을 오래된 테일러와 고객이 오랜 시간 골똘히 공들여 완성해 나가는 하나의 창조물에 가깝습니다. 그래서 세상 어디에도 같은 제품은 만들어질 수 없고 자신의 일생을 함께 보내는 단 하나의 옷만이 존재합니다.
이러한 측면에서 비스포크 수트는 단지 값비싼 사치품이 아니라 완성된 인간으로서 아주 합리적이고 타당한 소비이자 필수품입니다.
런던양복점은 그 비스포크의 정의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. 지난 50년 동안 비스포크의 이름아래 옷에 대해 고뇌하고 고심해온 테일러가 있고 코트 메이커가 있고 그리고 역사가 있습니다. 그 세월을 옷과 고객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오롯이 지켜왔습니다. 이제 그 세월 동안 축적된 기술과 진보된 감성을 바탕으로 한 걸을 앞으로 더 내 딛고자 합니다. 다만, 옷을 대하는 기본에 대해서 저희들은 급하게 그리고 쉬이 움직이지 않으려 합니다. 저희들은 수트라는 것이 전통과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그러한 철학에서 옷을 만들어 왔기 때문입니다. 또 그것이 저희를 지금까지 버티게 한 원동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.
고객과 함께 한 50년, 앞으로 이어나갈 새로운 50년으로 여러분께 100년을 약속합니다.